내독소의 역사: 인터넷이 없던 시절엔 어떻게 공부했을까


20세기 초 미국의 한 병원을 배경으로 의사들과 주변 인물을 그리고 있는 미드 ‘더 닉 The Knick”의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한 장면.

두 의사가 프랑스에서 시행된 외과 수술법에 대한 논문을 가까스로 훔쳐왔지만, 프랑스 학술지에 프랑스어로 발표된 논문이라 읽지도 못하고 닭 쫒던 개 처지가 된다. 사전을 붙잡고 쩔쩔매며 해석을 해보지만, 

“단어 하나에 5개의 뜻이 있는 언어라니! 뭐 이따위 언어가 다있어!”

라며, 두 손을 들고 만다. 


내가 한창 편집 디자인을 공부할 때는 대체 쿽과 인디자인과 같은 편집 프로그램과 포토샵이 없던 과거에는 어떻게 책을 만들었을까를 생각하며 등줄기로 흐르는 땀을 닦았다. 그런데  만화 그리느라 한창 공부  중인 요즘은 인터넷이 없었을 적엔 대체 어떻게 연구하고 공부했을까를 생각하면 머리 속이 아득해져 온다. 

아마도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보는 단절되어 있었을테고, 일부 주류 연구자를 중심으로 정보는 고여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처럼 영어가 학술계 공용어로서 자리를 자리잡지도 않았을테니 ‘더 닉’에서처럼 애써 논문을 구해도 언어의 장벽에 좌절했을 것이다. 

이처럼 지식의 공유와 전파가 빠르지 않았기 때문에 중요한 학문적 성취가 알려지지 못하고 시간의 강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경우는 과학사에서 부지기수였다. 대표적인 희생자론 멘델을 꼽을 수 있겠다. 

최근 공부하고 있던 내독소 연구의 역사에서도 이런 안타까운 사건들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


사람으로 치자면 뭐 각질 비스므리한 것과 비교할 수 있을 세균의 내독소 정체는 20세기 초반을 한참 지나서도 미스테리로 남아있었다. 왜 환자들이 살균한 증류수에 종종 염증반응을 일으키는지 의사들은 알지 못했다. 열을 일으키는 범인이 그람음성 세균의 각질, 아니 내독소라는 것은 1923년이 되어서야 주목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 내독소의 정체는 1874년부터 덴마크의 병리학자 패넘(Peter Ludvig Panum, 1820~1885)에 의해 언급되었다. 그는 세균의 독소에 두가지 유형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열에 강한 내열성 물질과 열에 약한 외독소로 구분하고, 내열성 물질은 세균이 분비하는 것이 아니라 세포가 분해(disintegration)되면서 방출된다고 서술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연구는 시간의 흐름 아래 묻혀버렸다. 

1892년에는 보다 확장된 세균성 내독소의 특징에 대한 연구가 유럽의 두 과학자들에게서 각각 발표되었다. 

코흐의 제자 출신인 독일의 세균학자 리차드 파이퍼(Richard Friedrich Johannes Pfeiffer, 1858~1945)는 콜레라 세균에서 과거 패넘이 발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내열성 독소와 열에 약한 외독소를 추출했다. 그는 내열성 독소가 "내부에 있는 독소(within toxin)"라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 최초로 “내독소(Endotoxin)”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내독소는 세균의 표면에 있는 세포벽의 조각이기 때문에 사실 부적절한 단어다. 그도 패넘과 마찬가지로 내독소가 세포의 일부분으로 외독소처럼 분비물이 아니라는 것을 정확히 파악했다.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의 병리학자 켄타니(Eugenio Centanni, 1863-1942)는 장티푸스의 원인균인 살모넬라 균에서 내열성 독소를 추출했다. 그는 이것을 “pyrotoxina”라고 불렀다.

켄타니는 “열 감염에 대한 조사- 세균의 열 독소(Investigations on Fever Infections—The Fever Toxin of Bacteria)”라는 일련의 논문을 1894년에 발표하였다. 여기서 “pyrotoxina bacterica”로 만든 물질(preparation)에 대해 서술하였다. 그는 살균한 여과액에서 수집한 순수한 세균 군집을 증식시켜서, 여기서 만든 세균성 독소 물질을 살균하여 흰 가루로 만들었다. 그는 대장균을 포함해 여러 세균을 이용해 같은 물질을 만들었다. 그는 모든 박테리아가 같은 독소를 가지고 있으며 세균성 감염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증세들이 이것과 강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비록 지금은 내독소가 그람음성 세균에만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켄타니는 내독소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했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켄타니의 많은 연구가 유명하지 않은 이탈리아의 한 저널에 발표되었기 때문에 세상에 알려지지 못했다.   

1900년대 초 포도당 주사제와 같은 비경구 제약용 용액이 발전하면서 “주사열(injection fever)” 문제가 점차 주목받기 시작했다. 1912년에는 리스터 연구소(Lister Institute)의 홀트(E. C. HORT)와 펜폴드(W. J. PENFOLD)가 여러 중요한 연구를 출판했다. 그들은 독성 물질이 오로지 그람음성 세균에서만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증류수에 존재하는 발열을 일으키는 물질은 세균과 관련이 있으며, 죽은 박테리아는 살아있는 것 만큼이나 독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들은 세균의 내열성 독소가 주사열의 원인임을 확신하였고, 최초로 내독소 오염을 확인할 수 있는 토끼 발열원 테스트를 표준화하였다. 

그러나 둘의 연구는 1923년 미국의 생화학자 시버트(Florence Barbara Seibert, 1897~1991)가 또다시 증류수에서 열을 일으키는 독성물질을 조사할 때까지 간과되었다. 

시버트는 세균성 오염의 원인이 발열을 일으키는 주범임을 증명하였다. 그녀는 내독소가 거의 무게가 없는 미량이라도 생물학적으로는 매우 활동적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다수의 연구자들이 그람음성세균의 세포벽이 복잡한 고분자 물질로 이루어져 있음을 관찰하였다. 이 복합체가 그람음성 세균이 일으키는 면역학적 반응인 발열성 독소의 정체라고 생각하였다. 이 후, 살균 만으로는 이 발열원을 완전히 제거했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제약 생산 단계에서 이러한 세균성 오염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 강조되었지만 별다른 방도를 찾지 못했다. 결국 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주사액을 비롯한 제약품의 사용이 급증하면서 ‘정체모를 열’ 문제가 다시 급부상하게 되었다. 그래서 1942년이 되어서야 미국 국립보건원과 14개의 제약회사가 손을 잡고 경구용 약물의 발열원 오염을 검사하기 위한 토끼 발열원 실험을 채택하게 되었다.

물론 토끼에겐 악몽의 시작이었다. <끝>   


* 내독소의 역사는 Williams, Kevin L. “Historical and Emerging Themes.” in: Williams, Kevin L., ed. Endotoxins: pyrogens, LAL testing and depyrogenation. CRC Press, 2013. 에서 발췌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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