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산길엔 무언가 있다



이제 판단을 내릴 때였다. 윤아의 얼굴은 오래된 식빵처럼 딱딱하게 변해 있었다. 요즘 집에서만 지냈던 윤아의 체력은 등산로에 발을 내딛자마자 뜨겁게 달궈진 팬 위의 물방울 같이 순식간에 증발해버렸다. 윤아에선 이제 수분뿐만 아니라 영혼마저 빠져나오려 하는 게 느껴졌다.


아내도 심각했다. 산을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가 비명을 질렀다. 아내가 애벌레 같은 게 종아리를 물었다고 해서 살펴보니 약 2센티미터 간격의 구멍 자국 두 개가 나 있었다. ‘이게 애벌레가 문 자국이라고? 자국을 봐선 턱이 족히 2센티미터는 되겠는데. 사람을 무는 이렇게 큰 애벌레가 있던가?’ 혹시 작은 뱀이 아니었냐고 물었지만 아내는 한사코 검은 바탕에 초록색을 띤 작은 애벌레였다고 주장했다. “아무리 아프고 놀랐다지만 뭐가 물었는지는 확인을 하고 쳐냈어야지! 정말 뱀 아닌 건 맞지?” 속상함이 짜증으로 표출됐다. 아내는 괜찮다고 했지만 이제는 약간 절뚝이는 것 같았다. 독사에게 손가락을 물렸다던 한 인터넷 글이 자꾸 떠올랐다. 그는 해독제를 맞았지만 시간이 지체되어 물린 부위가 괴사해 손가락을 절단할 뻔했다고 했다.

“안 되겠다. 그만 올라가자!” 등산을 시작한 지 겨우 30분 정도 지났을 즈음이었다. “윤아가 너무 지쳤어. 정상까지 1시간은 더 올라가야 하고, 거기서 다시 내려와야 하는데 벌써 이렇게 지쳐서는 안 될 것 같아. 너도 물린 곳의 통증이 퍼지는 것 같다며? 무엇에 물린 지도 알 수 없고. 혹시 더 심해질지도 모르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집에 가자.”


우리는 발걸음을 돌려 힘들게 올라온 경사길을 다시 내려갔다. 이럴려고 산에 온 게 아니었는데. 바람이나 쐬줄 겸 윤아를 데리고 나선 등산길은 최악으로 치닫고 말았다. 집에서 출발할 때의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차가운 긴장감이 우리의 입을 얼어붙게 했다. ‘왜 오늘따라 유난스럽게 아내는 벌레에 물린 걸까? 정말 애벌레가 맞기는 한 걸까? 턱 크기가 2센티미터가 넘는 애벌레가 어딨다고… 뭐가 물었는지 왜 제대로 확인도 안 한 거람? 윤아는 내가 평소에 운동 좀 하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아~ 속 터져.’ 걸음을 내딛을수록 나는 더 깊은 번뇌에 빠져들었고, 짜증은 기포가 되어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그때였다. 오른쪽 다리 복숭아뼈 근처에서 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동시에 그 통증은 택배 아저씨의 벨소리 못지 않은 반가움이었다. ‘크으윽~! 이 통증……지금 내 복숭아뼈에 있는 이 놈이 아내를 물었던 녀석인가?! 잘 걸렸다!’ 아픔을 꾸욱 참으며 오른쪽 복숭아뼈 쪽을 내려다보았다. 검은색 바탕에 노란 줄무늬가 눈에 띄었다. 그건 말벌이었다! 아~ 이제야 삼라만상 모든 게 이해됐다. 아내의 종아리에 난 그 두 구멍은 물린 자국이 아니라 벌에게 두 방을 쏘인 거였다! 96학년도 수학능력 평가 3교시 사회 과학탐구 영역 24번 문제의 답이 떠오르지 않아 비워 두었다가 답안지를 제출하기 직전 해답이 떠올랐을 때 느꼈던 그 깨달음의 카타르시스가 25년이 지난 지금 다시 온몸을 휘감았다. 하지만 환희는 찰나였고, 곧바로 욕지거리가 터져 나왔다. ‘이 미친놈의 벌은 왜 얌전히 지나가는 사람한테 달려들어서 침을 쏘는거야!’


“여보! 알아냈어. 당신 종아리는 애벌레가 문 게 아니고 말벌이 쏜 거야! 나도 지금 쏘였어! 악~ 정말 아프다! 당신은 두 방이나 쏘였으니 정말 무진장 아팠겠는데.” 아내는 그제야 맺힌 한이 풀린 듯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거봐! 정말 아팠는데 믿어주지도 않고!” “근데, 어쨌든 애벌레는 아니었잖아……”


나는 근처에 벌이 더 있을까 봐 걱정이 됐다. “벌이 더 달려들지 모르니까 빨리 내려가자.” 등산로를 거의 벗어날 무렵 앞서가던 윤아가 비명을 질렀다. “으악~! 벌이다! 벌!” ‘아무튼 애들 앞에선……’ 엄마, 아빠가 벌에 쏘였다니까 윤아가 겁이 나서 다른 벌레를 벌로 착각하나 보다고 생각했다. “아아~악! 벌이 배를 쏘았어! 으아앙~ 아파~!” 급히 윤아한테 달려가니 정말 아까 보았던 것과 같은 벌이 윤아 배에 있었다. 엄마가 들고 있던 수건으로 녀석을 후려치고 배를 보니 이미 쏘여서 벌겋게 부어있었다. “빨리 도망가자!” 우리는 우는 윤아를 달래 가며 서둘러 그 지랄 맞은 벌들이 횡행하는 등산로를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내달렸다. 셋 다 벌에 쏘여서 도망가는 꼴 하고는. 우리는 괜스레 웃음이 터져나왔다.


* 나중에 찾아보니 우리를 쏜 건 땅벌이었다. 상당히 호전적인 녀석으로 땅 밑에 둥지를 틀며 근처로 다가오면 다리 쪽으로 달려들어 침을 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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