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혈과 산과의 발전을 이끈 제임스 블런델



제임스 블런델은 1790년 12월 27일 런던에서 태어났으며, 목사 토마스 톰슨(Thomas Thomason)에게서 훌륭한 고전 교육을 받았다. 블런델의 의학 교육은  유나이티드 서더크 병원(United Southwark Hospitals)에서 시작됐으며 그의 의사로서의 경력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곳에서 블런델은 애슐리 쿠퍼(Astley Cooper)에게서 해부학과 외과수술을, 그의 외삼촌인 존 해이그턴(John Haighton)에게는 생리학과 출산에 관해 배웠다. 의학 공부는 에딘버러에서도 계속되었으며, 라틴어로 쓴, 음악과 청각 감각에 대한 논의를 다룬 논문으로 1813년에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런던으로 돌아와 해이그턴 밑에서 출산에 관한 강의로 학술 경력을 시작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생리학 강의도 하였다. 그는 1818년에 왕립외과협회의 면허를 허가받았다.


비록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전혈 수혈의 가능성은 수세기에 걸쳐 문헌상에서 논의되고 있었지만, 블런델은 그 가설을 현실로 만들었다. 


생체 해부를 했던 블런델이었기에 동물 실험 역시 생리학적 지식을 얻을 수 있어서  정당하다는 입장에 있었다. 따라서 그의 초기 수혈 실습은 개를 이용해 진행하였다. 그는 개를 이용해 수혈 실험을 계속 이어나갔고 가이 병원의 연구 시설에서 주사기를 이용해 개들에게 전혈 수혈을 시도했다.


1818년에는 사람을 대상으로 주사기를 이용한 최초의 수혈을 실행하였고 “주사(Syringe)를 이용한 수혈 실험(Experiments on the Transfusion of Blood by the Syringe)”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출판하였다. 이 중요한 논문은 주사를 이용해 개와 사람에 대해 실행되었던 전혈 수혈에 관한 자신의 실험을 논하고 있다. 논문에는 혈액 응고를 방지하기 위해 수혈 절차를 빠르게 진행하는 것에 관한 이점, 수혈받는 사람의 정맥 안으로 공기 유입을 피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 그리고 수혈 지원자의 혈액과 수혈받는 자의 혈액 사이에 때때로 일어나는 응고문제를 다루고 있다.


1818년과 1829년 사이에 블런델과 그의 동료는 인간 혈액을 이용해 모두 열 번의 수혈을 실행하였고 4번 이상 성공하였다. 첫 성공적인 수혈은 세 시간에 걸쳐 블런델의 조수에게 8온스의 혈액을 수혈받은 후 극심한 분만 후 출혈에서 회복한 여성이었다. 블런델은 분만 후 출혈, 극도의 영양실조, 산욕열, 유문의 암(cancer of the pylorus), 자궁 파열 및 광견병 환자를 수혈 대상으로 선택했다. 블런델의 환자들은 수혈 결정을 내리는 시점에 이미 병세가 심각했기 때문에, 수혈이 어떠한 합병증으로 나타날지를 임상 기록으로 발견하기란 불가능했다.


블런델은 수혈에 관한 가치 있는 연구 외에도 동물 복막(peritoneum)을 연구하여 산부인과 분야에서 복부 수술의 가능성에 대한 발전을 이루기도 하였다.


그는 복부를 외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유력한 증거를 축적했고, 1823, 1824년에 복부 수술에 관한 세 개의 논문을 출판했다. 그는 방광의 복강 내 파열에 대한 정확한 진단, 작게 복부를 절개 후 손가락을 통해 소장의 주름을 통과시킴으로써 장 중첩증(intestinal intussusception)의 완화, 추가적인 임신을 방지하기 위해 제왕절개 수술로 나팔관 절개, 건강한 난소를 제거하여 심한 월경통을 완화시키는 등의 경험을 얻었다.


산과에서 블런델의 가르침은 조산사에게 큰 통찰력을 제공했다. 전치태반(태반이 자궁 출구에 가까이 있거나 덮고 있는 것)과 출혈사고를 구별하고 불필요한 외과적 수술을 지양하라고 충고했고,  태아의 둔위분만(breech presentation:태아가 머리보다 엉덩이 쪽이 먼저 나오는 분만)에서만 수술을 권장했다. 블런델은 겸자의 사용에 신중했고, 사혈, 구토, 설사제로 자간(eclampsia: 임신중독증)을 치료했다.


이처럼 블런델은 골반의 장기들(pelvic organs)의 외과적 처치에 관한 연구와 전혈(whole blood) 수혈에 관한 임상 실습 도입과 같은 생리학에 중요한 이바지를 하였다. 특히 연구 기간 동안 외삼촌 해이그턴과 함께 하며 많은 지지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블런델의 모든 연구는 대략 10년 정도만 진행되었다. 1830년 이후로 블런델은 수혈에 대한 흥미를 급격히 잃었다. 한편 수혈의 유용성과 다양한 관점에 대한 공방들은 계속되었다. 많은 사람이 수혈은 위험하고, 일부 환자들을 더 빨리 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수혈로 호전된 환자 대부분은 수혈이 없이도 어느 정도 자연적으로 회복될 수 있었을 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제임스 블런델은 분만 후 출혈의 위험에 있는 환자에게 수혈을 시행해 위험 요소를 가능한 없애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며 수혈에 대한 이점을 강하게 주장하였다.


블런델은 1838년에 영국 왕립 외과 협회의 회원으로 공인되었고, 2년 후에 행정직 직원과 심한 분쟁 후 가이 병원에서 은퇴하였다. 그 후 블런델은 기이한 시간에 일하기 시작했다. 정오에 일어나서 오후 동안 집에서 환자들을 보았고, 저녁에는 마차로 왕진을 다녔다. 그는 마차에 많은 책을 싣고 다니며 왕진하는 사이사이에 책을 읽었다. 이를 위해 마차에는 실내조명을 달았다. 블런델은 50대 후반인 1847년에 이 일에서 두 번째 은퇴를 하고, 런던 피커딜리에 있는 커다란 저택으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그는 그리스 문학연구에 전념하며 조용한 삶을 살다가 1878년 1월 15일에 사망하였다. <끝>

-참고 및 발췌-

○ HemOnc Today,“James Blundell: pioneer of blood transfusion”. Healio, February 25, 2009. (http://www.healio.com/hematology-oncology/news/print/hemonc-today/%7Be144eb73-e097-43b0-b128-65af2c9029a4%7D/james-blundell-pioneer-of-blood-transfusion)

○ Kaadan, Abdul Nasser, and Mahmud Angrini. "Blood transfusion in history." JOURNAL OF THE INTERNATIONAL SOCIETY FOR THE HISTORY OF ISLAMIC MEDICINE (JISHIM) 2009 

○ James Blundell. Public Broadcasting Service website. (http://www.pbs.org/wnet/redgold/innovators/bio_blundell.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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