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역병이 될 때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는 단시간에 전 세계로 기하급수적으로 퍼져나갔다. 극심한 불안과 혼란 속에서 우리는 이 새로운 질병에 이름을 붙이는 데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에 대해 걱정할 시간은 거의 없었다.

사람들이 통제할 수 없는 미지의 대상과 씨름하면서 대중적 논의는 노골적인 인종차별과 물리적 폭력 행동에 대한 관용을 키워갔다. 이런 상황에서 잘못 지어진 이름은 듣는 사람에게 잘못된 생각을 심어줄 수 있다.

언어학적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도그 휘슬(dog whistles: 특정 집단만 숨겨진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메시지)과 폭력적 행동 사이에 놓인 길은 흐릿하다. 빈곤, 복지 또는 도심부와 같은 무해한 단어와 사회주의자, 불법, 확립과 같은 더 구체적인 단어들은 어떻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세계보건기구는 2월 11일이 되어서야 이 질병에 코비드-19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너무 늦었다. 이미 이 질병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고, 사람들의 인식에 뿌리내렸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종류는 여러 개라서 사람들은 이 병의 기원을 언급하는 직관적인 이름인 “중국 독감”이나 “우한 바이러스”를 생각해냈다. 이 이름들은 처음엔 중립적으로 사용되었을지 모르지만, 나쁜 고정관념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는 건 분명했다. 코비드-19는 발음이 쉽고, 동물, 사람, 장소와 연관되지 않는 세계보건기구의 관례를 따른다.

그러나 중국, 아시아인들과 코비드-19의 연관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중국 기업체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고,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인종차별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이름에 숨겨진 힘이 있는 건 분명하다. 중국과 거리를 두려는 대만은 우한 바이러스라는 초기 용어를 계속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대부분 다른 나라들은 재빨리 새로운 이름인 코비드-19를 사용하지 않은 또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편의상 생겨났을 이름이 어떻게 더 넓은 영어권 대중에게 부정적 의미를 갖게 할까?

보통 우리는 상대에게 일어난 일로서의 질병이 아니라, 병을 유발하는 행동의 결과로써 질병을 바라보고 개인적인 결점으로 개념화한다.

게다가 최근 많은 나라에서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한 인종차별에서 보이는 것처럼, 특히 미국은 세균이 국외에서 유입된다는 생각과 결부시켰던 역사를 갖고 있다. 부정직한 이민자들이 낯선 곳의 세균들을 유입시킨다는 오래된 고정관념으로 인해 이민자들은 입국하기 전에 폭력적인 공중보건 관행에 노출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거짓 건강 상의 이유로 추방됐다. 질병은 범죄, 빈곤, 중독, 부도덕한 행동, 심지어 공산주의와 관련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세균은 국경을 신경 쓰지 않고, 아마도 해외에서 휴가를 보내고 돌아오는 미국인에게 쉽게 들러붙어 들어왔을 수도 있다.

따라서 현재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이 질병의 명칭이 오명을 남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 관리들은 코비드-19가 중국에서 발견되었을 수도 있지만, 이곳에서 기원한 것은 아니라는 거짓 이야기를 퍼트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변화무쌍한 오늘날의 정치적 환경에서 언어의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러나 무기로서의 언어는 날카롭기보다는 무디다.

우리는 연설자와 더 많은 청중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명백하게 부정적인 말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공공장소나 전문분야에서 그런 부정적인 말을 무기로 사용하기 어렵다. 인종차별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널리 인식되었고, 행여 그러한 행동으로 인종차별주의자로 불리는 것은 치명적인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비방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상대로 하여금 인종차별주의자로 불릴 수 있는 더 좋은 기회를 내주게 되며, 자신이 내뱉은 말은 이를 더욱 부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 비방적인 언어보다 더 해로운 언어는 의도한 방향으로 밀고 나가면서도 규범에서 벗어나지 않아서 논란이 되었을 때 그럴듯하게 얼버무릴 수 있는 회색 영역에 놓여 있다.

연설이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은 것을 청중들이 추론하도록 의도적으로 암호화한 것인지, 아니면 표면적인 뜻 그대로인지를 구별하는 건 어려울 수 있다.

지난해 아프리카계 미국인 지역사회를 지지한 것으로 알려진 조 바이든 대선 후보가 “가난한 (아프리카계) 아이들은 백인 아이들만큼 똑똑하고 재능도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이었을까? 그의 실언이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의 청중 둥 일부가 공유하고 있는 가정을 드러낸 무의식적인 코드였을 수도 있다. 비방적인 말과 달리 이런 말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분간하기 어렵다.

2008년 대선 당시 버락 오바마는 상대인 존 메케인 상원의원과 공화당이 자신을 “지폐에 그려져 있는 다른 대통령과 닮지 않았다”라고 언급했던 일을 밝히자, 맥케인 캠프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우리는 모든 사람의 동등한 권리를 위해 평생을 싸워온 존 매케인을 인종차별주의자로 묘사할 수 있도록 그 어느 누구도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매케인 캠프는 오바마의 성명서에서 어떻게 전투적인 용어를 읽어냈을까? 비슷한 것을 보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명백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정치적인 코드의 단어들은 흔히 도그 휘슬이라고 하는데, 이것에 민감한 사람들은 들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들리지 않는다.

만약 청중이 은유를 이해하고 지지한다면, 이러한 회색 언어는 공동체 전체로 퍼질 수 있고, 독을 뿜어낼 것이다. 이처럼 불명확하지만 부정적인 맥락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될수록 이러한 암호화된 의미는 점점 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철학자 린 티렐(Lynne Tirrell)은 어떤 단어를 부정적인 맥락으로 자주 사용한다고 부정적이 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대화는 행동과 반응을 동반하는 춤과 같다. 듣는 사람이 말을 받아들이거나 저항함으로써 반응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추론과 의미를 진화시키려는 독성 언어에 대해 청중들이 의미 변화에 도전하고 저항하기보다는 스스로 받아들이고 사용한다면 숙주에서 수주로 이동하는 바이러스처럼 사회를 감염시킬 것이다. 이런 식으로 언론은 논평 없이 유해한 연설을 충실히 보도하거나, 왜곡된 중립으로 잘못된 정보를 제시함으로써 자신도 모르게 편향된 정치적 화두를 퍼트릴 수 있다.

티렐은 독이나 질병과 같은 정도의 해로움을 야기하는 힘을 가질 수 있는 개념적 언어로서 독성 언어의 역학(epidemiology of toxic language)을 생각한다. 우리가 독성이나 바이러스의 맥락에서 언어 행동을 생각할 때, 특히 점점 더 빈번하게 사용하고, 널리 퍼져나갈수록 폭력적인 관점에서 해로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비방, 욕, 혐오, 다른 경멸적인 언어가 포함되지 않았을 때 조차도 어떻게 말이 해로울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용한 의학적 은유다.

티렐이 지적했듯이, 도널드 트럼프가 “시리아 난민들은 뱀이다”라고 말할 때, 그와 마찬가지로 청중은 뱀을 통해 시리아 난민 전체에 대한 어떤 부정적인 생각을 추론하고 그리게 된다. 티렐은 공화당 컨설턴트인 프랭크 런츠의 말을 인용해, “처음에 트럼프는 그의 공격성 발언으로 인해 사람들을 섬뜩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은 트럼프의 발언을 즐기고 흡수했습니다.”라고 말했다. 티렐은 “터무니없는 발언이 반복될 때마다 다음 발언의 충격은 낮아지고, 그러한 말에 대한 수용 가능한 수준이 낮아져서 결국 ‘정상’으로 보일 정도로 흔해지게 됩니다.”라고 설명한다.

보통의 언어 아래 음험함이 숨어 있는 독성 언어는 옳은 대중들에게 퍼지면서 바이러스 역할을 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한 때 알았던 말이 아니며 노골적인 욕설만큼 해로울 수 있다. (번역 김명호) * JSTOR의 “When Language Goes Viral - How do innocuous words become insidious in the face of a public health emergency?”를 발췌 번역, 편집하였습니다. (https://daily.jstor.org/when-language-goes-vi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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